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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thletic

토트넘 홋스퍼 FC 역사, 이야기 ③ (프리미어리그 출범 & 레비회장 등장)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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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년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토트넘은 여러 감독 교체와 선수 이적 등을 통해 변화를 추구하였습니다. 테디 셰링엄, 위르겐 클린스만 등 주요 선수들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감독 경질과 선수 부상 등으로 성적이 좋지 않았습니다. 1999년부터 2004년까지는 다니엘 레비 회장의 리더십 아래 다양한 감독들이 팀을 이끌었으나, 성적은 계속해서 좋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로비 킨과 저메인 데포의 활약은 팀에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그 시대의 이야기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까요?

    토트넘 홋스퍼 이야기 세번째

    토트넘 이야기(스퍼스의 시작과 성장)

     

    프리미어리그 출범(1992년~1999년)

    프리미어리그 출범 첫 시즌에는 테디 셰링엄이 득점왕이 되어 팀을 8위로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베너블스 감독이 떠나면서 팀은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1993-94 시즌에는 강등 위기에 처했습니다. 다행히 셰링엄이 부상에서 돌아오자 승점을 쌓고 겨우 잔류를 확정지었습니다. 1994-95 시즌에는 부정 선수 영입 사건으로 중징계를 받았으나, 슈가 회장의 항소로 벌금 외에는 중징계를 피했습니다. 이 시즌에는 위르겐 클린스만, 일리에 두미트레스쿠, 게오르게 포페스쿠를 영입하여 전력을 강화하였습니다. 그러나 공격적인 전술은 수비 불안을 야기하였고, 성적도 하락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아르딜레스 감독은 경질되었고, 게리 프랜시스가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하여 팀을 7위로 안정화시켰습니다. 그러나 위르겐 클린스만과 다른 주요 선수들이 팀을 떠나면서 전력이 약화되었습니다.1995년에는 루엘 폭스와 크리스 암스트롱을 영입하고, 레들리 킹을 스카웃하는 성공을 거뒀지만, 데니스 베르캄프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이후 두 시즌 동안은 8위와 10위로 마치며, 테디 셰링엄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였습니다. 이를 메우기 위해 레스 퍼디난드와 다비드 지놀라를 영입하였습니다.그러나 1997-98 시즌에는 퍼디난드가 부상을 당하고, 팀 성적이 떨어지며 감독인 프랜시스가 사임하였습니다. 그 후임으로 크리스티안 그로스를 영입하였지만, 성적은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위기 속에서 위르겐 클린스만이 임대로 팀에 돌아와 팀을 강등 위기에서 구하였습니다.1998-99 시즌에는 그로스 감독이 경질되고, 조지 그레이엄이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하였습니다. 그레이엄은 팀 셔우드와 슈테펜 프로인트를 영입하여 전력을 강화하였습니다.

    테디셰링엄
     
     테디세링엄 
    위르겐 클린스만

    위르겐 클린스만
    다비드 지놀라

    다비드 지놀라

    풋볼리그와 토트넘 황금기

     

    다니엘 레비 회장의 등장(1999년~2004년)

    1998-99 시즌에는 토트넘은 리그 11위로 마무리했지만 리그컵에서 우승하였습니다. 이는 1991년 FA컵 우승 이후 8년 만의 트로피였습니다. 다비드 지놀라 선수는 PFA 올해의 선수상과 FW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그러나 1999-2000 시즌에는 리그 성적이 저조하였고, 세르게이 레브로프의 영입도 실패하였습니다. 2000-01 시즌 도중 슈가 회장은 클럽 지분을 ENIC 그룹에게 팔고 사임하였고, 레비가 새로운 회장이 되었습니다. 이후 토트넘의 레전드 글렌 호들이 감독으로 부임하였습니다. 그러나 주장 솔 캠벨이 라이벌인 아스날로 이적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2001-02 시즌에는 리그컵 결승에 진출하였으나 블랙번 로버스에게 패해 준우승하였습니다. 2002-03 시즌에는 로비 킨과 제이미 레드냅을 영입하였습니다. 그러나 호들 감독의 입지는 위태로워져 2003-04 시즌 초에 경질 당하였습니다. 팀의 성적은 계속 좋지 않았으나 로비 킨과 저메인 데포의 활약이 팀에 희망을 줬습니다.

    다니엘레비 회장 등장

    토트넘의 포체티노와 무리뉴 시대

     

    토트넘의 계속되는 부진(2004년~2014년)

    2004년부터 2008년까지 토트넘은 대대적인 개혁과 선수단의 물갈이를 통해 변화를 시도하였습니다. 상티니 감독이 사임한 후, 마틴 욜이 감독으로 부임하였고, 많은 선수들이 영입되었습니다. 하지만 2004-05 시즌에는 성적이 좋지 않았습니다. 2005-06 시즌에는 팀의 성적이 개선되었으며, 한 시즌 동안 6위 밖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식중독 사건으로 인해 주전 선수들의 컨디션이 떨어져, 결국 아스날에게 4위를 뺏기고 챔피언스리그 티켓도 놓쳤습니다. 그러나 이는 1989-90 시즌 이후 16년 만에 거둔 최고의 성적이었고, 헤이젤 참사 이후 첫 번째로 리그 순위로 유럽대항전에 진출한 시즌이었습니다. 2006-07 시즌에는 선수들의 부상과 적응 문제로 성적이 저조하였으나, 베르바토프와 로비 킨의 투톱이 자리잡아 마지막 12경기에서 1패만 기록하며 2년 연속 5위로 마쳤습니다. 그러나 수비력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습니다.2007-08 시즌에는 많은 이적료를 투입하여 새로운 선수들을 영입하였으나, 시즌 초반부터 성적이 좋지 않아 강등권으로 추락하였고, 욜 감독이 경질당하였습니다. 2007년부터 2014년까지 토트넘은 후안데 라모스, 해리 레드냅, 안드레 빌라스보아스, 팀 셔우드 등 여러 감독의 교체와 전술 변화를 겪었습니다.라모스 감독은 칼링컵 우승의 성공을 거두었지만, 팀 재건에 실패하여 감독직에서 물러났습니다. 그의 후임인 레드냅 감독은 팀을 회복시키며 8위로 마무리하였고,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그러나 2011-12 시즌에는 팀 내 마찰과 성적 부진으로 사임하였습니다.빌라스보아스 감독은 대대적인 선수 영입과 전술 변화를 시도하였으나, 선수들의 부진과 적응 문제로 성적이 좋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었습니다.마지막으로 셔우드 감독은 아데바요르의 부활과 해리 케인, 나빌 벤탈렙 등 유소년 선수들의 데뷔를 이끌었으나, 대형 팀에 대한 약점과 전술 실패로 팀을 이끄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이 시기 토트넘은 스피드에 중점을 둔 전술로 프리미어리그 최고 수준의 공격력을 자랑했으나, 수비력 부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습니다. 2013-14 시즌에 가레스 베일이 이적한 이후로는 이러한 스타일을 살리지 못하였습니다.

    베르바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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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비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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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데바요르

    아데바요르

    EPL 역대 득점순위 그리고 손흥민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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