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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thletic

토트넘 홋스퍼 FC 역사, 이야기 ① (토트넘 창단과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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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2년에 창단된 토트넘 홋스퍼 FC는 런던의 프로 축구단으로, '스퍼스'라는 애칭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본관은 런던의 토트넘에 위치하며, 홈구장은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입니다. 팀은 프리미어리그, UEFA 챔피언스 리그, UEFA 유로파 리그에서도 우수한 성과를 보였으며, 팀의 엠블럼은 싸움닭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팀의 모토는 '용감한 것은 도전하는 것이다'를 의미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토트넘의 시작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토트넘 홋스퍼

    프리미어 리그에 소속된 영국, 런던의 프로 축구단인 토트넘 홋스퍼는 1882년에 창단되었습니다. 그들의 본관은 런던의 토트넘 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홈구장은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입니다. 애칭인 '스퍼스'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2016-17 프리미어 시즌 2위를 하였습니다. 또한,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2018-19 시즌에 준우승하였고, UEFA 유로파 리그 초대 우승팀이기도 합니다. 이 외에도 토트넘 홋스퍼는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을 가장 많이 배출한 클럽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팀의 엠블럼은 축구공 위에 서있는 싸움닭을 형상화한 것이며, 클럽의 모토는 라틴어로 'Audere EST Facere'로, 영어로는 'To Dare Is to Do', 한국어로는 '용감한 것은 도전하는 것이다'를 의미합니다. 팀의 명칭은 과거에는 매체마다 다르게 부르기도 했지만, 현재는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토트넘 홋스퍼'로 결정되었습니다. 이 명칭은 2005년 8월에 정부언론외래어심의공동위에서 심의를 거쳐 정해진 것이며, 이후로 모든 언론에서 이 표기를 따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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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트넘 홋스퍼 창단과 성장(1882년~1948년)

    토트넘 홋스퍼 FC는 1882년 9월 5일 영국 런던 토트넘 지역의 학생들에 의해 창단되었습니다. 창단 당시의 팀명은 홋스퍼 FC였으며, 이후 1884년에 현재의 팀명인 토트넘 홋스퍼 FC로 변경하였습니다. 이후 1895년에는 아마추어에서 프로팀으로 전환하였고, 1896년부터는 여러 지역별 리그에 참가하였습니다. 이들 중에서는 남부 리그, 유나이티드 리그, 사우던 디스트릭 콤비네이션, 서부 리그, 런던 리그 등이 있습니다. 1896년에는 첫 감독으로 프랭크 브레텔을 선임하였고, 그는 팀을 정비하며 1899-1900 남부 리그에서의 우승에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특히 1901년에는 FA컵에서 우승하였는데, 이는 풋볼리그 창설 이후 논리그 클럽이 FA컵을 우승한 첫 사례이자 유일한 사례였습니다. 1908-09 시즌에는 풋볼 리그 디비전 2에 참가하면서 본격적으로 풋볼 리그에 합류하였고, 이후 1부 리그로 승격하였습니다. 그러나 1914-15 시즌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리그가 조기 종료되었고, 토트넘은 그 시즌 리그 꼴지였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리그가 재개되었을 때, 토트넘은 1부리그에서 강등되었지만, 이후 다시 승격하였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아스날 FC와의 라이벌리가 형성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토트넘 홋스퍼는 여러 차례 강등과 승격을 반복하였으나, 1949-50 시즌에는 디비전 2 우승을 차지하며 다시 한번 승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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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더 로위, 지미 앤더슨 감독 체제(1949년~1958년)

    1949년에 취임한 아더 로위 감독의 리더십 아래, 팀은 '푸시 앤 런'이라는 공격적이고 속도 중심의 축구를 선보이며 새롭게 변모하였습니다. 이후 1949-50 시즌에는 15년 만에 1부 리그로 승격하였고, 바로 다음 시즌인 1950-51 시즌에는 빌 니콜슨의 활약으로 1부 리그에서 첫 우승에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1952-53 시즌과 1953-54 시즌에는 리그 10위와 16위에 그치며 성적이 좋지 않았고, 이후 아더 로위 감독이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 그는 대니 블랜치플라워라는 뛰어난 선수와 계약을 맺었는데, 이 선수는 두 번의 FWA 올해의 축구선수상을 수상한 선수였습니다. 로위 감독의 후임으로는 지미 앤더슨이 선임되었고, 그는 클리프 존스, 테리 메드윈, 피터 베이커, 론헨리, 테리 다이슨, 모리스 노먼, 바비 스미스 등의 뛰어난 선수들을 영입하거나 유스팀에서 승격시키는 등 팀을 잘 리빌딩하였습니다. 빌 니콜슨이 코치로 부임한 뒤에는 블랜치플라워와 바비 스미스의 활약에 힘입어 1956-57 시즌 2위를, 그리고 1957-58 시즌에는 3위를 기록하였습니다.(아래는 빌 니콜슨의 사진)

    토트넘 빌니콜슨
    빌니콜슨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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